“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사서삼경은 물론 불어(佛語) 시 1,000편을 암송한다는
무애 양주동 박사는
“예수쟁이들이 달랑 성경 한 권도 못 외우며
예수 믿는다는 것이 민망해 보인다.”
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옛 선비들은 자기가 공부하는 경서를
수천 수백 번 읽어 그 뜻을 완전히 소화해 내는
침잠완색(沈潛玩索, 빠져 들어가 즐기면서 공부하는 것)
법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주자는 “공자 맹자가 내 가슴 속에 들어앉도록 경서를
수백 수천 번 읽어야 정통(精通)해진다.”고 말했고,
세종대왕도 구양수와 소동파의 글을 모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1,100번 읽었으며,

우암 송시열도 맹자를 수천 번 읽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옛날식 공부 방식이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그렇지만 신앙생활은 성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백경천도(百經千禱), 백 번 성경 읽고
천 번 기도해야 신앙이 온전히 설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경만 읽으면,
말씀이 소화되지 않아 이단사설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한 기도만 하고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신앙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유다 왕 요시야가 왕이 된 지 18년 만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왕은 그 율법 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순종할 것을 엄숙히 서약하고
온 백성에게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에는 평화와 번영이 찾아 왔습니다.

기도 : 주여,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무시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