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최대 은행인 '로열 뱅크 오브 캐나다'(RBC)의 고든 닉슨(Nixon) 행장은 지난 2007년 6월 '위기관리 체제'를 선언했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 2곳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투자 실패로 파산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닉슨 행장은 고객을 직접 만나고 장기 전략을 짜던 일상적인 일을 멈췄다. 대신 매일 은행의 자금 사정을 점검하는 등 내부 관리에 집중했다. 그런 노력과 위기관리의 결과로 전 분기(11~1월)에 8억4200만달러의 순익을 올리면서 흑자경영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작년 4분기에 글로벌 은행인 씨티그룹이 173억달러 적자,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18억달러의 적자를 낸 것과는 대비된다.

RBC뿐만이 아니다. 토론토-도미니언, 노바 스코샤, 몬트리올 등 캐나다 주요 은행들은 금융 위기 와중에서도 흑자를 자랑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전 분기에 캐나다 5대 은행의 순익 합계는 23억달러에 달한다.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기본자본비율을 포함한 은행 건전성 지표도 좋다. 캐나다 은행들의 작년 말 기본자본비율은 9.8%를 기록, 미국 투자은행(4%), 유럽 상업은행(3.3%)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한국(8.8%)보다도 좋다.

그렇다고 정부의 구제금융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캐나다는 G7(선진7개국) 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정부의 구제 금융이 없었다. 캐나다 정부는 정기 입찰을 통해 모기지 채권을 사주는 정도의 유동성만 공급하고, 자기자본으로 간주되는 우선주의 한도를 높여줬을 뿐이다. 캐나다 은행들은 지난 18일 정부의 유동성 지원조차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캐나다 6대 은행이 손실처리한 부실채권의 규모는 158억달러로 전 세계(8871억달러)의 2%에 불과하다.

캐나다 은행들의 실적이 이처럼 호조를 보이자 전 세계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초 발표한 '세계 경쟁력 보고서'의 은행 건전성 부문에서 캐나다가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40위로 추락했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후 첫 순방지인 캐나다에서 "미국이 캐나다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캐나다 은행 시스템"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캐나다 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 더욱 빛나는 비결은 뭘까. 가장 큰 비결은 닉슨 행장처럼 작은 조짐에도 위기 관리로 경영 행태를 바꾸는 '보수주의 영업풍토'이다. 캐나다 은행들은 호황기에도 성장을 제한하는 보수적인 영업 행태를 유지하고 있다.

고희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캐나다 은행들은 '머니게임'을 하는 투자은행이 아닌 안정적인 예금자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적인 운용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은행 규제에는 일몰 규정(sunset clause·일정 기간이 지난 후 폐지되는 조항)이 있지만, 규제를 평균 5년마다 재평가한 후에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규제 덕택에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집값 거품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에선 담보 가치의 100% 가까운 대출이 이뤄져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불거졌지만 캐나다는 상황이 달랐다. 김용길 캐나다신한은행장은 "캐나다에서 주택담보대출은 담보 가치의 80% 선에서 이뤄졌다"며 "그래서 미국 만한 주택 거품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은행원이 아닌 대출모집인이 대출상품 판매에 나서는 바람에 나중에 사고가 터지자 부실 대출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었다. 그러나 캐나다는 은행이 직접 나서서 대출 심사를 하는 과거의 영업관행을 유지했다.

캐나다 은행들이 보수적인 경영을 한 데는 1990년대 경기침체 때 미국 은행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재열 국민은행연구소장은 "캐나다 은행들은 자산 키우기 경쟁을 하지 않은 덕택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껴갈 수 있었다"며 "과거 자산확장에 열중하던 국내 은행들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