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구글이 스마트폰 ‘넥서스 원(Nexus One)’을 출시했다. 구글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기반한 구글폰 ‘넥서스 원’은 출시되자마자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아이폰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한동안 KT가 도입한 아이폰의 위세에 눌려있던 SK텔레콤은 구글폰의 국내 도입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기도 했다. 아이폰과 구글폰은 미국의 대표적 IT 거인들이 만드는 제품이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된다. 두 제품 모두 타이완산(産)이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구글폰은 각각 타이완의 IT 대표기업 훙하이(鴻海)와 훙다(宏達)가 만든 제품이다. 이들 대만 기업들은 아이폰과 구글폰이 각광을 받자 애플과 구글 못지않은 치열한 기(氣)싸움을 펼치고 있다.


구글폰 만드는 ‘훙다(宏達)’의 왕쉐홍
‘타이완의 정주영’ 왕융칭의 딸… 창업 13년 만에 세계적 IT 스타로

구글폰을 만든 ‘훙다(宏達)’는 타이완의 휴대폰 위탁생산 전문기업이다. 1997년 창업한 지 이제 13년을 갓 넘긴 신생회사이기도 하다. 창업 이후 훙다는 주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 이동통신 회사들의 휴대폰 아웃소싱을 담당했다. 발주자가 휴대폰 설계도를 건네면 설계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 구글폰을 위탁생산한 훙다의 왕쉐홍. / photo 야후 타이완 훙다를 창업한 사람은 왕쉐훙(王雪紅·52)이란 여장부다. 지난해 기준으로 21억달러(약 2조3100억원)의 재산을 가진 타이완 최고의 여자 갑부다. 1958년 타이완서 태어난 왕쉐훙은 해외에서는 쉐어 왕(Cher Wang)이란 미국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왕쉐훙의 아버지는 지난 2008년 타계한 고(故) 왕융칭(王永慶) 회장. ‘타이완의 정주영’에 비견되는 왕융칭 회장은 15살 때 쌀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맨손으로 타이완 플라스틱그룹(포모사 그룹)을 이룩, 타이완 최고 재벌이 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재산은 무려 70억달러(약 7조7000억원)에 달한다.

왕쉐훙은 왕융칭 회장과 그의 두 번째 부인 양챠오(楊橋)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4명의 부인을 거느렸던 왕융칭이 낳은 8명의 딸 가운데 셋째다. 재벌가의 딸로 태어난 그는 타이베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유학하는 타이완 여학생은 왕쉐훙 한 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본래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 빠진(巴金) 등의 소설을 즐겨읽고 피아니스트가 꿈인 어린 소녀에 불과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인의 피를 거스를 수 없었다. 왕쉐훙은 훗날 “자신의 재능이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을 절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왕쉐훙은 재벌가 딸로 편안한 삶을 버리고 창업의 길을 택했다. 맨손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 왕융칭은 그의 본보기였다고 한다. 재벌가 딸임에도 불구하고 왕쉐훙은 버클리대 유학 때 유대인 가정에서 하숙을 했다. 1981년 대학 졸업 후 그의 둘째 언니와 형부가 운영하던 따중(大衆)컴퓨터 PC 사업부에서 해외영업을 시작으로 IT업계에 뛰어들었다. 따중에서 일한 지 7년 만인 1988년 그는 언니 회사에서 독립해 500만대만달러를 들여 웨이성(威盛·VIA테크놀러지)전자를 인수해 자신의 회사로 만들었다. 미국 국적의 웨이성은 집적회로(IC) 설계와 제작을 주 업무로 하던 회사다.

하지만 1988년 웨이성 인수 직후부터 왕쉐훙의 고난은 시작됐다. 더군다나 1994년에는 인텔이 타이완에 전격 상륙했다. 타이완 IT 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웨이성의 만남을 “새우가 고래를 만난 격”에 비유했다. 신생기업 웨이성의 직원은 3000명에 불과했지만 인텔은 직원 수가 8만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시장가치는 무려 70배 이상 차이가 났다.


▲ 국내에도 들어온 훙다(HTC)의 스마트폰 터치 다이아몬드. 하지만 왕쉐훙은 아버지 왕융칭으로부터 전수받은 ‘짠물 경영’으로 고난의 3년을 버텨낸 끝에 1997년 인텔에 이어 집적회로 설계와 칩셋 생산에서 세계 1류 수준에 올랐다. 그리고 웨이성 인수 10년 뒤인 1997년에는 휴대폰 위탁생산을 주업으로 하는 훙다를 창업해 오늘에 이르렀다.

위탁생산에만 머물던 훙다는 2006년 6월에는 HTC란 영문 브랜드도 출범시켰다. 일본 마쓰시타(松下)가 파나소닉(Panasonic)이란 영문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한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훙다가 HTC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하는 전자제품은 스마트폰부터 시작해 포켓 PC, LCD, 태블릿 PC까지 거의 모든 IT 제품을 총망라한다. 지난해 5월에는 SK텔레콤이 훙다가 출시한 스마트폰 ‘HTC 터치 다이아몬드’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왕쉐훙은 여성 기업가로서 남자들을 부리는 용인술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집적회로 업계에서 명성을 날리는 남성 IT고수들을 좌우 양 날개에 포진시켜 회사를 이끌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전기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천원치(陳文琦)와 린즈무(林子牧)는 각각 연구개발과 기획·전략파트를 나누어 담당했다. 타이완에서는 왕쉐훙, 천원치, 린즈무 이들 세 명을 ‘3검객(三劍客)’으로 부른다. ‘넥서스원’을 언론에 공개한 훙다의 CEO 저우융밍(周永明)도 그의 창업 동지다.

훙다는 구글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주요 고객으로 거느리고 있다. 왕쉐훙이 갖고 있는 화상(華商) 특유의 ‘관시(關系·연줄) 다지기’가 큰 힘을 발휘한 결과다. 왕쉐훙은 범용 휴대폰 대신 일찍부터 스마트폰에 주력했고 2008년에는 구글이 무료공개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훙다와 구글은 협력관계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훙다가 구글이 선보인 웹브라우저 크롬에 기반한 태블릿 PC(키보드가 없는 터치스크린 PC)도 위탁생산할 것”이란 소문도 업계에 파다하다.

아이폰 만드는 훙하이(鴻海)의 궈타이밍
맨손으로 직원 70만명의 세계 최대 IT업체 일궈… 타이완 세 번째 갑부

훙다와 함께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업체는 타이완의 훙하이(鴻海)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팟 등을 위탁생산하는 업체로 해외에서는 ‘폭스콘(Foxconn)’이란 영문 브랜드로 더 잘 알려졌다. 전자제품 생산을 주 업무로 하고 애플과 델, HP, 인텔 등의 컴퓨터와 IT 제품을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OEM)으로 납품하고 있다. 훙하이 직원들은 “전세계의 컴퓨터 5대 가운데 1대는 훙하이에서 나온 제품”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 아이폰을 위탁생산한 훙하이의 궈타이밍. / photo 야후 타이완 훙하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궈타이밍(郭台銘·60) 회장이다.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직원 수 70만명의 세계 최대의 IT 위탁생산 전문기업 훙하이를 맨손으로 일궈낸 인물이다. 그는 개인재산만 33억달러(약 3조6300억원)로 타이완 세 번째 부자로 꼽힌다.

1950년 타이완 타이베이의 한 경찰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본적은 중국 본토 산시(山西)성 진청(晉城)이다. ‘진상(晉商)’이라고 불리며 관우(산시성 출신)를 숭상하는 산시 상인은 원저우(溫州) 상인과 함께 유대인 상인에 비견되는 대표적 화상(華商)이다. 때문에 궈타이밍에겐 ‘진상’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따라 다닌다.

타이베이의 2년제 해사전문대를 졸업한 궈타이밍은 항운회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 직후 타이완서 전자제품 바람이 불자 궈타이밍도 1974년 친구와 함께 훙하이를 창업했다. 창업 당시 훙하이는 직원 수 15명의 흑백TV 부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궈타이밍은 평소 훙하이를 “인재는 4류, 관리는 3류, 설비는 2류, 고객은 1류”인 회사로 정의한다. 그의 말처럼 훙하이의 고객은 델, HP, 인텔 등 미국 최고의 IT 기업들을 망라한다. 궈타이밍은 1류 고객들을 잡기 위해 12달러(약 1만5000원)짜리 모텔에 투숙해가며, 미국의 50개주(州) 가운데 35개주를 직접 자동차를 몰고 돌아다녔다. 델의 창업주 마이클 델이 선전을 방문했을 때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고, 그 후 훙하이는 델의 최대 위탁 생산업체가 됐다.

궈타이밍은 “고급기술이건 저급기술이건 간에 돈을 버는 기술이 좋은 기술”이라고 말한다. 덩샤오핑이 주창한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론’과 비슷한 논리다. 중국 본토에 일찍 진출한 것도 훙하이 고속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훙하이는 1988년 ‘폭스콘(富士康·Foxconn)’이란 브랜드를 세워 중국 본토에 진출했다.


▲ 궈타이밍과 재혼한 부인 쩡신잉. / photo 야후 타이완 광둥성 선전 외곽의 룽화(龍華) 과기원구에는 훙하이의 중국 생산기지가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팟의 생산을 전담하는 곳이다. 궈타이밍은 판매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이팟 생산을 통째로 수주하며 애플과 ‘관시(關系)’를 맺었다. 훙하이의 룽화 생산기지에는 27만명의 직원이 24시간 각종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룽화 기지 안에는 직원 숙소와 대형식당 외에 소방서, 병원, 은행, 잡화점, 수영장까지 70여동의 건물이 한데 모여 있다. 매일 15만명분 이상의 식사를 준비하는 대형식당서 하루 소비하는 쌀의 양만 10t이 넘는다고 한다.

통이 큰 걸로 유명한 그는 자신의 본적이 있는 산시성 진청에도 훙하이 공장을 세웠고 어머니의 고향인 산둥성 옌타이(煙臺)에도 훙하이 공장과 학교를 건립했다. 쓰촨대지진 때는 모두 1억3000만위안(약 230억원)을 기부했다. 또 지난 2008년에는 암 연구에 써달라며 150억대만달러(약 5300억원)를 타이완대 병원에 쾌척하기도 했다.

본래 궈타이밍은 중화권에서 일과 가정밖에 모르는 남자로 유명했다. 중화권 부호들은 대개 첩(妾)을 거느리기 일쑤지만 궈타이밍은 결혼 생활 동안 단 한번의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다. 지난 2005년 유방암에 걸려 55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의 첫 번째 아내 린수루(林淑如)와의 러브스토리는 타이완에서 꽤 유명하다. 궈타이밍은 아내 린수루에게 수억위안을 들여 동유럽 체코의 한 고성(古城)을 매입해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조강지처가 사망한 후에는 바로 구설에 올랐다. 아내 린수루의 사망 후인 2008년 7월 자신에게 탱고를 가르치던 24살 연하의 무명 사교댄스 강사 쩡신잉(曾馨瑩·당시 34)과 결혼을 발표해 대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궈타이밍의 두 번째 신붓감으로 류자링, 관즈린, 린즈링 등 특급 여배우들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였다. 그의 결혼식에는 마잉주(馬英九) 현 타이완 총통도 참석했다. 당시 타이완 현지 언론들은 “(궈타이밍 사후) 쩡신잉이 과연 얼마만큼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궈타이밍은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지난해 4월 쩡신잉과의 사이에서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최근에는 2억위안(약 360억원)의 호화주택을 쩡신잉에게 선물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