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日 시민의식]
대피소 담요 부족하자 둘로 찢어 나눠 쓰고, 식수차 앞에서 누구도 "물 더달라" 안해

3·11 대지진이 일어난 후 2차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데는 일본인의 질서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모범생' 같았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재앙 속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부조리와 비행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지진 발생 이후 첫 출근길이었던 14일 오전, 지하철 운행이 재개됐으나 제한적인 전력공급으로 지하철역 곳곳이 북새통을 이뤘다. 도쿄역·신주쿠역 등 주요 지하철역 매표소나 승강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별다른 동요나 혼란은 없었다.

일본 이바라키(茨城)현 히타치(日立)시 주민들이 14일 정부가 나눠주는 석유를 받기 위해 호리병박 모양으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진 피해 주민들은 한겨울처럼 추운 날씨에도 난방용 석유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연합뉴스

특히 대형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동북부 해안 곳곳에 급히 마련된 대피소를 메운 일본인들은 '인내'와 '이해'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담요를 둘로 찢어 나눠 쓰는 사람들, 식수와 석유를 사기 위해 배급소 앞에 불평 하나 없이 수백m씩 줄지어 선 사람들, 먼저 왔다고 욕심내지 않고 뒷사람을 위해 자기 먹을 분량만큼만 라면과 주먹밥을 사는 사람들…. 어디를 가나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긴급 지원된 식수차 앞에서 누구도 "조금 더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을 닫은 빵집 주인은 피난민들에게 무료로 빵을 배급하고, 한 여성은 '우리 집 화장실을 이용하셔도 됩니다'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제 집 화장실을 개방하기도 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공동체에 기여하는 법을 알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 재난상황이 일어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을 받는 덕에 일본인들은 정부와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고립된 사람도 "나부터 구해달라"고 난리를 치지 않고 높은 곳에 올라가 커다랗게 'SOS'를 써놓고는 가만히 구조대를 기다렸다. 현지 주민은 "정부와 경찰, 자위대 등이 모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협력체계가 잘 이뤄져 상황이 잘 수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대 피해지 중 하나인 미야기(宮城)현 내 편의점·쇼핑센터 등에서 돈과 식료품을 훔치는 사건이 14일 오후 2시까지 40건 정도 발생했다. 하지만 강력사건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도한 평온이 아닐까'라고 느껴지는 측면도 곳곳에서 보였다. 지진과 대해일 다음 날 도쿄 곳곳에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 시각 TV에서는 폐허가 돼버린 해안가의 모습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었다. 나리타(成田)공항에는 여전히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