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문화적 잔재이니 뿌리 뽑자?
원산지가 어디이건 왕벚나무는 일본사람들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고 한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일본사람들이 원래 화려한
벚나무를 좋아했는데 왕벚나무는 이들의 기호에 딱 맞는 품종이었다”고 말한다. 김 박사에 따르면 왕벚나무가 발견된 이후 일본인들은 품종개량을
거듭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후 개량된 왕벚나무를 한반도 곳곳에 심었다.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나무였지만 ‘일본식’으로
곳곳에 심어진 게 문제였다. 일제는 신작로를 세우면서 ‘가로수’의 개념이 없던 우리나라에 가로수로 벚나무를 심었다. 창경궁 정원에도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우리 전통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는 벚나무를 관상용으로보다는 목재로 활용했다”고 했다.
팔만대장경 중 상당수가 벚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문서보관함 등으로 벚나무가 애용됐다. 화려한 벚나무를 도로변에 줄지어 심거나 궁궐 정원에 세워놓은
전례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해방 직후 벚나무는 일본산이고 일제의 잔재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신문에서는 연일 “일제의
잔재인 벚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사설까지 실었다.
◆벚나무는 그렇게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왕벚나무를 일본산이 아닌 제주도산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1962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제주도의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됐고, 1965년 왕벚나무 자생지 2곳이 천연기념물로 등록됐다. 2001년에는 산림청 임업연구원 분자유전학연구실에서 한·일
왕벚나무를 대상으로 디옥시리보핵산(DNA)지문분석을 벌인 결과 한라산이 원산지인 사실을 규명했다.
산림과학원의 김찬수 박사는
“문제는 원산지가 아니다”라며 “벚나무의 태생을 일본으로 보는 것은 문화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에는 법으로 정해진 국화가 없고 다만
국화(菊花)가 왕실의 상징으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일본사람들은 벚꽃을 그저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벚나무가 자연스레 자신들의 국화인 것 마냥
생각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있던 나무였지만 관상용으로 쓰이지 않았던 벚나무였다. 우리가 벚나무를 관상용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왕벚나무는 ‘제주도산’으로 항상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