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루 1000원… 필기 거리 5000~6000m로 보통 펜의 5배
출시 한 달 만에 30만개 판매… 외제 제치고 고가펜 시장 돌풍

지난 4월 3일 광화문 교보문고의 필기구 판매대. 김윤정(24·서울시 도봉구)씨는 여러 가지 펜을 10여분간 시험 종이에 그어보며 고르고 있었다. 수십 가지의 펜 가운데 그녀가 선택한 건 다소 투박해 보이는 검정색 펜. 심사숙고해 고른 그 펜은 유명하다는 일본의 하이테크펜도 독일의 스테들러펜도 아니었다.

“이 펜은 처음 봤는데 써보니까 필기감이 좋아요. 필기할 때 쓰기에 굵기도 적당하고 번지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비싼 외국 펜과 비슷한 성능인데 가격은 훨씬 저렴해 쓰기에 부담도 덜하고요.”

김씨가 선택한 펜은 모닝글로리의 마하펜. 낯선 브랜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필기구를 고를 때 평소에 선호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 매장에서 필기촉감 테스트를 해본 사람들은 대체로 마하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장 관계자는 “매장에 선보인 지 얼마 안 된 제품인데도 소문을 듣고 마하펜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펜 판매대에서 마하펜 진열 개수도 늘렸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문구제조업체 모닝글로리의 ‘마하펜’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3월 5일 출시한 이래 3월에만 30만개가 팔려 나갔다. 올해 마하펜의 판매 목표량도 250만개로 잡고 있다. 연간 한 품목당 100만개가 팔려 나가면 성공했다고 보는 펜 시장의 판매 기준으로 볼 때 이 정도면 대박 조짐이 역력하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필기구 매장에서 한 학생이 마하펜을 고르고 있다. /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펜 시장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마하펜의 성공은 의미가 크다. 한 자루에 1000원 이상 하는 고가펜 시장은 일본, 독일 등 외제 필기구가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문구수입이 사실상 자유로워지면서 국내 문구업체들은 선진 문구업체와의 시장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다양한 필기구의 수입이 시작되고 소비자는 비싸지만 질 좋기로 소문난 외제 펜을 쓰기 시작했다.

업계는 국내 필기구 시장 규모가 4조원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지만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판촉물 시장과 반제품 수입 등이 얽혀 복잡한 데다 업체별 정확한 점유 비율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의 2008년 1~5월까지 5개월간 문구수출입규모 분석표를 살펴보면 국내 필기구 시장에서 외제 필기구의 강세를 엿볼 수 있다. 필기구의 경우 전년도(2007년 1~5월)에 비해 24.8% 증가한 4929만달러(약 660억원)가 수입됐다. 문구류 수입의 대표주자인 복사용지 수입이 전년 대비 36.9% 감소한 것을 비롯해 전체 수입 증가율이 마이너스대를 보이는 것에 비하면 필기구의 수입 증가는 눈에 띄는 대목이다.

외제 필기구의 시장점유율은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들 외제 필기구가 대부분 고가 제품이라는 데 있다. 모나미 볼펜으로 상징되는 국산 필기구는 대부분 사무실에서 사용되고 문방구나 대형서점의 문구코너, 문구 전문점 등 일반인이 즐겨 찾는 곳의 필기구 매장은 일본 등 외제가 석권한 지 이미 오래다.

밀려드는 고가의 수입펜과 저가의 중국산 틈에서 국내 업체들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주문자상표 부착 생산(OEM) 전문인 소규모 문구제조업체 중 약 20%가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마하펜은 국내 업체로서는 드물게 고가 펜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는 안정적인 노트 시장 외에 추가적 매출을 일으킬 아이템이 없던 모닝글로리 입장에서도 마하펜은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모닝글로리는 기본적으로 노트와 팬시에 강하지만 필기류에서는 그다지 머리에 떠오르는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닝글로리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한때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당시 애국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국산품을 사주자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일부 소비자들이 모닝글로리를 외국 브랜드라고 착각하고 물건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닝글로리는 언론의 도움을 받아 한국기업임을 홍보해서 큰 위기를 극복하고 매출이 꾸준히 올라가긴 했지만 매출을 두세 배씩 올리는 히든 아이템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 출시된 마하펜이 기존 매출을 혁신적으로 높이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회사 측은 자신한다.

마하펜의 가장 큰 장점은 우수한 필기감이다. 수성잉크는 잉크를 녹이는 용제로 물을 사용해 유성보다 잉크가 부드럽게 배출된다. 따라서 일정한 글씨의 질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잉크의 점도가 떨어져 잘 흐르고 번져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마하펜은 잉크량을 조절하기 위해 수성잉크가 빠져 나오는 데 가장 적합한 0.4㎜ 굵기의 파이프팁을 펜 끝에 달아 단점을 보완했다. 기존 수성펜보다 번짐 효과가 적으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가는 필기감을 충분히 낼 수 있다. 두꺼운 필기감을 선호하는 서양권과는 달리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는 필기감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본의 경우 한자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가는 필기구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일본의 경우 0.1㎜ 굵기의 필기구도 많이 팔린다. 우리나라는 요즘 한자는 거의 안 쓰는 편이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가는 필기구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

마하펜은 일직선으로 선을 그었을 때 필기거리가 약 5000~ 6000m다. 모닝글로리에 따르면 실험 기계에 펜을 끼워 10㎝ 둘레의 원을 그리기 시작하는 필기테스트 결과, 마하펜 하나의 잉크를 절반 사용했을 때 거리가 3000m였다. 모닝글로리 관계자는 “잉크를 전량 소진했을 경우 6000m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모닝글로리에서 시판 중인 ‘젤터치펜’ 같은 일반적인 중성펜의 경우 필기거리가 보통 1000m 안팎임을 감안하면 보통 필기구보다 적어도 5배나 오래 쓰는 셈이다.

비밀은 탱크형 잉크카트리지 사용에 있다. 중성펜의 경우 파이프 대롱에 잉크가 담겨 있는 스틱심인데 마하펜은 펜 바디 전체에 잉크가 들어있어 잉크양이 월등히 많다.

마하펜 탄생 배경에는 모닝글로리에서 과거에 출시했던 마하3.98이라는 펜이 있다. 마하3.98은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펜이 아니다. 일본에서 펜의 앞부분부터 잉크가 들어가는 부분까지 수입한 부품에 케이스만 씌워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사용된 기술이 파이프팁 방식이었다.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았지만 해외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그때부터 지금의 마하펜 개발이 시작됐다.

필기구 개발은 금형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개발을 반대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마하펜 개발 작업은 계속됐다. 2년이라는 긴 시간과 문구업체로서는 큰 금액인 5억원이라는 개발비용을 들여 결국 탱크 타입에 파이프팁을 채용한 ‘마하펜’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소비자가격은 1000원으로 책정했다. 마하펜과 비슷한 성능의 외제는 가격대가 2000원 안팎이다. 회사 측은 “기술 수준과 제품 가치로 따진다면 마하펜의 가격은 2000원 선이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 성향과 그에 따른 판매 차이가 큰 국내 문구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최대한 마진을 줄였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가의 외국제품과 품질 면에서 차이가 없는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국내 문구업체로서의 사명감도 있었다. 

모두들 불황으로 힘들다는 이 시기에 회사 측은 마하펜 등의 선전(善戰)에 힘입어 올해 모닝글로리 전체 매출이 지난해보다 13% 늘어난 43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온 세상이 감원·감봉 태풍의 회오리 속에 휩싸여 있지만, 이곳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오히려 예년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기대하는 직원도 많다. 마하펜 개발자에게는 판매량에 따라 인센티브도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마하펜도 개선할 여지는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각 20명으로 이루어진 모닝글로리 서포터즈를 비롯하여 마하펜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디자인’과 ‘색깔의 다양화’를 개선할 점으로 꼽는다. 검정 계통의 두툼한 마하펜 본체는 펜도 하나의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요즘 추세에 비춰보면 고객에게 외면 받기 쉽다. 다양한 색깔이 선보이는 펜 시장에서 마하펜은 검정색 단일 제품으로 선택의 폭이 좁다는 약점을 가진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면 마하펜은 저렴한 가격에 높은 수준의 성능을 지니고 있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평가받는다.


| 인터뷰 | 모닝글로리 디자인연구소 최정헌 디자이너

“개발에만 2년… 비용 많이 들어 내부서도 반대
머리카락 굵기 관 개발하느라 수없이 시행착오”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 회사 내부에서 일부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는데 어떻게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나. “일본의 파일럿이란 회사는 어려운 시기에 하이테크펜 개발 하나만으로 회사 전체가 살아났고, 아이맥이란 컴퓨터 하나가 어려웠던 미국애플사를 일으켰다. 과거 마하3.98의 판매 데이터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았다는 이미 검증된 부분이 있었기에 이를 근거로 자신있게 임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개발기간이 2년이나 걸렸다는데 오래 걸린 이유가 있다면. “안정된 시점에서 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수출할 때 펜의 잉크가 비행기에서의 기압 차이 때문에 터지는 현상이 많았다. 문제를 확인하고 금방 수정이 가능한 게 아니라서 오래 걸렸다. 탱크 타입이나 파이프팁은 기존 필기구에도 사용돼온 방식이지만 탱크 타입의 파이프팁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정밀가공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굵기가 0.07㎜인데 머리카락보다 약간 두꺼운 0.1㎜ 굵기의 잉크가 나오는 관을 개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다. 우리나라에 없는 기술이었고 해외 선진업체 중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품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개발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달라. “해외 출장이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여권과 함께 챙긴 게 펜 샘플이었다. 비행기 내에서 잉크가 터지지 않는지 늘 관찰했다. 뚜껑을 여닫을 때, 손에 쥐고 있을 때의 압력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펜 뚜껑을 여닫으며 잉크가 쏟아질까봐 마음 졸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디자이너인데도 펜의 디자인 이외의 부문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회사의 경우 ‘일인전담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다. 엔지니어가 설계하고 디자이너는 껍데기만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제품 개발 전 과정에 관여한다. 시장조사, 제품개발, 업체와의 단가조율, 디자인, 판매동향까지 디자인실에서 관리해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다.”

검정색 외에 다른 색깔이 출시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다. “개발 과정에서 검정색 잉크에 맞춰 펜 기능을 최적화시켰다. 컬러마다 잉크 점도가 다르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을 다른 컬러에 적용시켜 보니 잉크 흐름이 좋지 않거나 필기감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준비는 같이 했었지만 검정색을 먼저 출시한 것이다.”

해외 수출 계획이 있나. “현재는 국내에서만 판매 중이다. 나머지 컬러가 나온 후 수출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현재의 마하펜은 스타일 자체가 사무적이고 남성 취향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 추가적으로 학생이나 여성 취향의 슬림한 제품을 출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