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에 비해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혁신을 매일 매일 축적해 매우 질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품이나 소재 같은 게 매우 강합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니까요."
3·11 대지진 이후 일본이 세 번째의 '잃어버린 10년'을 맞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경영 석학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76) 히토쓰바시(一橋)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숨은 힘을 은근히 자랑했다. 그를 만나니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가 떠올랐다.
노나카 교수는 일본과 한국이 서로 다른 점이 뭐냐는 질문에 "일본이 초식계(草食系)라면 한국은 육식계(肉食系)라고 말할 수 있죠"라고 대답했다. "일본은 육식계는 아니지만, 끈질긴 측면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탁월성을 추구하는 쇼쿠닌(職人·전문기술자)의 도(道), 그런 강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의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좀처럼 흉내를 낼 수도 없습니다."
한국의 기업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삼성 이야기를 꺼냈다. "삼성은 철저하게 일본에서 배웠습니다. 동시에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삼성은 글로벌화와 스피드에서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지역전문가 제도까지 두면서 정말로 현장에 밀착했지요. 일본은 글로벌과 현장의 지(知)에서 삼성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학자는 한국과 삼성의 약점을 점잖게 지적했다. "삼성의 '빨리빨리' 문화는 속도가 빠르면서 동시에 매우 엄격합니다. 항상 '푸시(push)' '푸시'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지속가능성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계속 긴장만 하면 피로가 오게 마련이니까요." 그는 삼성에 소재와 부품, 상품을 모두 아우르는 지(知)의 종합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모듈(module)을 조합해 내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피드 코리아의 한계
삼성은 최초이자 최고다 철저히 日을 모방하면서 상대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데 얼마나 버틸지는 의문
노나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전매특허가 된 조어(造語)인 '암묵지(暗默知·표현하기 힘든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지식)'라는 표현을 꺼냈다. "암묵지의 축적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래도 인간이니까요. 스피드와 중장기적인 지속력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일본 경제가 부진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디지털화와 모듈화입니다. 이것이 진전되면서 고도의 암묵지가 없어도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됐죠. 이와 함께 중국, 한국, 대만 기업이 성장했습니다. 둘째, 스피드와 글로벌화입니다. 일본은 글로벌화에 늦었습니다. 글로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본이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고도의 상품은 필요없습니다. 세계 모두가 그런 상품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쇼쿠닌의 관점에서 일본의 기준을 세계에 고집했죠." '기술 오타쿠'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바람에 세계 시장과 눈높이가 맞지 않게 되고 고립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철저하게 일본을 모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철저하게 분석하며 디지털화·모듈화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기술을 완전히 따라잡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라도 미국·유럽보다는 수준이 높았기에 세계 시장에 통할 수 있었고, 스피드와 글로벌화에서도 일본을 넘어섰다고 그는 설명했다.
노나카 교수는 일본이 글로벌화에 늦었던 이유로 오만(傲慢)과 과거의 성공 체험을 꼽았다.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된 셈이죠. 일본에선 내수시장에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는 일본의 실패 경험을 반성하면서도 일본의 부진을 가져온 바로 그 쇼쿠닌, 아날로그, 초식계 문화가 언젠가 다시 일본의 부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톱-다운(top-down)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빨랐던 반면 일본은 바텀업(bottom-up)구조라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그는 "혁신이라고 하는 것은 톱다운보다는 바텀업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일본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리더라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는 중장기 경영의 지(知)가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회사와 다양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종합할 수 있는 리더 혹은 프로듀서, 프로젝트 리더를 얼마나 빨리 조직적으로 육성하느냐에 일본의 장래가 달려 있습니다." 노나카 교수는 메이지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혼다자동차 창업자처럼 지(知)를 종합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본이 그 동안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을 발휘해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에서 '고토즈쿠리(애플과 같이 디자인·소프트웨어·서비스를 종합해 소비자에게 높은 가치의 체험을 주는 것)'으로 옮겨가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경영이란 공동선을 위해 탁월성을 무한히 추구하는 과정"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가 일본식 경영의 부활을 믿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영의 신화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미국식 경영은 역시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 하느냐 하는 경제학적인 사고에 매우 가깝습니다. 무한경쟁이라고 하는 이상향이 있고, 거기서는 누구도 초과 이익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균형을 깨는 불완전 상태를 만들어 이익을 얻는다는 생각입니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이라고 하는 게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엔론에서 서브프라임까지 차례 차례 이런 생각이 파탄을 맞고 있습니다."
美德의 경영
미덕은 돈이 아닌 ‘가치’… 각 직원들의 꿈이 세상의 꿈이 되는 과정
기업의 이윤과 共同善이 일치될 때 비로소 新天地가 열려
노나카 교수의 경영 이론의 핵심은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미덕(美德)의 경영'이다. 단순히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이나 가치와 합치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 경영을 뜻한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입니다. 금전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탁월성(卓越性·excellence)을 무한히 추구하면서 자신을 완성시키는 과정, 그것이 경영입니다."
그는 "경영이라고 하는 것은 비전(vision)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전이란 것은 좀 더 큰 사회적 관계라고 할까요. 공동선(共同善·common good)을 실현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개별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비전을 추구하는 결과로 공동선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결과적으로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는 공동선을 추구하다 보면 이익으로 연결되는 이유 중 하나로 사회와의 관계성이 깊어지면서 혁신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들었다.
"개별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다는 차원이 되면 사회와의 관계성이 매우 넓어지게 됩니다. 최근 이러한 것을 '에코시스템(eco system·생태계)'이라고도 표현하죠. 그 관계성이 넓어짐에 따라 대중의 지식이 공유하고 융합돼 혁신의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다 큰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이 있으면 직원들도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요."
그는 GE의 예를 들었다. "GE에서는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환경친화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씁니다. 에콜로지(생태계)와 이매지네이션(상상력)을 결합한 용어입니다. 이런 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담은 표현입니다. 이런 목표를 보면 직원들이 절로 동기부여가 되고, 큰 목표를 향해서 나서게 되면서 관계성이 커져 혁신(革新)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