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식 결혼을 앞둔 서민·중산층 부모들은 너나없이 한숨이 깊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고 폭넓게 번진 호화 결혼 세태 때문이다. 서울 특급
호텔 결혼식은 양쪽 집안 참석자 300명씩의 식사비가 쉽게 1억원을 넘는다. 꽃 장식만 수천만원이다. 그런 호텔 결혼식의 주말 예약이 비수기도
없이 반년 넘게 밀려 있다. 사회 지도층과 특수층의 이런 결혼 행태를 보며 중산층 자식들까지 부모 능력은 아랑곳없이 호화 결혼을 당연히 여기게
돼버렸다.
정신 나간 결혼 세태가 계층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번지면서 한 해 결혼 40만건에 혼수 포함한 예식 비용으로 12조원이
들어간다. 결혼식 평균 비용이 3000만원에 이르러, 철없는 자식 성화에 부모들 등골만 빠지고 있다.
자식의 결혼 적령기를 맞은
부모들은 가족 부양하고 자식 교육·취직시키느라 노후(老後) 준비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정년이 다가오거나 이미 정년퇴직한 뒤여서 겨우 장만한
집 한 채 줄여가며 몇 십년을 살아야 하는 처지다. 이제 겨우 허리 펴볼 생각도 접은 채 허덕이면서도 자식이 몇 천만원이라도 살림 밑천으로
쓰겠다면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는 게 부모 심정이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돈을 하룻저녁 결혼식 치르는 데 까먹겠다고 나서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 자녀 결혼식을 교회나 시립·구립회관 등에서 조촐하게 치를 경우 소속
부처와 공기업 평가 때 큰 폭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공직자 자녀들의 과시·사치 결혼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민간 부문
결혼 문화 개선책은 여성가족부가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은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공포했다. 과시적이고 소비적인 의례(儀禮)의 간소화를 권고하는
것이었다가 잘 지켜지지 않자 1974년 법으로 규제하는 준칙으로 바꿨다. 가정의례준칙은 1999년 김대중 정권이 폐지했고 그러면서 특1급 호텔
결혼식이 허용됐다. 독재 정권 시절엔 결혼식까지 정부가 통제하느냐는 반감이 컸다. 지금은 그 가정의례준칙이라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젠 분수와 정신을 차릴 때가 됐다. 자식 결혼시키는 부모 한숨짓고, 청첩장 받는 사람 부담스럽고, 식장에 간 하객 주눅 드는 결혼
허례(虛禮)만은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