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도 명시했듯이 3·1 독립운동으로 태동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귀중한 역사적 현장을 사진으로 증언한 이가 세계적
수의병리학자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이다.
당시 그는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세브란스의전에서 병리학을
가르쳤는데,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갑성으로부터 사진 기록을 의뢰받고 3·1운동 당일 파고다공원과 서울시청 앞에서 만세 현장을 증언하게
된다.
"많은 군중들이 자유를 요구하며 맨주먹으로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제국주의에 맞서 일어선 그때의 정경은 참으로
잊을 수 없고 눈부신 광경이었다." 이렇게 술회한 그는 3·1운동을 한국 정신의 상징으로 보았고, 그 요체는
정의로움(righteousness)과 신념에 대한 성실함(integrity)으로 규정했다.
캐나다에서 은퇴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3·1운동 같은 정신운동이 지속돼야 하며, 그런 운동의 영원한 지지자가 되고자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의로움과 성실함은 스코필드
자신에게도 최고의 도덕적 가치였다.
실제 스코필드는 귀국 후 기고문에서 파고다공원 가까운 곳에 3·1 학생연구회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며, 풍요한 사회나 복지국가에 앞서 정의로운 사회부터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정과 부패를 증오했으며 그것이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이라고 진단했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많이 변했다.
국권 잃은 최빈국에서 이제는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선진사회에 근접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많은 혼란과 갈등 요소가 있고, 선진국 진입과 통일국가라는 역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향후 어떻게 국가의 역량을 결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스코필드가 말한
부정부패 척결, 정의사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 구축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가오는 총선·대선에서 선출되는
지도자들이 3·1 독립운동에서 선열들이 보여준 도덕적 용기를 계승해 간다면 대한민국은 세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필드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많은 선열의 희생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일깨우며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1919년 당시 젊은이와 늙은이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 국민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