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모방할 수 없는 고급기계 만드는 히든 챔피언(세계 시장 점유율 1-3위 기업) 1350개
중국 제치고 경상 흑자 1위… 실업률, 선진국의 절반도 안돼, 부동산 시장까지 홀로 활황

"미국 경제가 역할 모델로 삼고 배워야 할 대상은 바로 독일이다."(스티븐 래트너·前 미 백악관 경제특별보좌관)

"독일은 세계 경제에서 '새로운 중국'이다."(로마노 프로디·前 이탈리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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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인, 학자들 사이에 '독일 경제 예찬론'이 쏟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의 연쇄 충격으로 선진국 경제가 예외 없이 휘청거리는 와중에 독일만 수년째 독야청청(獨也靑靑)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더 빛나는 독일 경제의 위용은 수치에서 확연하다. 2005년 한때 12.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올 2월 현재 5.7%로 독일 통일(1990년) 후 가장 낮다. 청년 실업률은 8.9%(지난해 8월)로 프랑스(23.5%)·미국(17.7%)은 물론 유로존 평균(20.4%)의 절반 미만이다. 반면 지난해 수출액(1조4756억달러)은 사상 최대였고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 1위이다.

독일은 2004년부터 8년 연속 매년 1000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유일한 선진국이며, 최근 10년간 서방선진 7개국(G7) 가운데 1인당 GDP 상승률이 가장 높다. 미국 국채(國債)보다 금리가 더 낮아 전 세계 국채를 통틀어 선호도가 가장 높은 안전 자산 역시 독일 국채이다. 독일이 '유럽의 우등생'이자, '절대 강자(强者·Power house)'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10여년 전인 2000년대 초만 해도 독일 경제는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었다. 분배와 과도한 복지에 초점을 둔 '라인 자본주의'와 신기술의 부작용 등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저먼 앙스트(German Angst)' 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보란 듯이 다시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요즘 독일 전역은 어디를 가도 활력이 넘친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황인 부동산 시장이 대표적이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동안의 독일 내 상업용 부동산 투자액은 126억2000만유로(약 19조5000억원)로 2010년 전체 투자액(108억유로)을 압도했다. 독일 분데스방크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125개 도시에서 거주용 부동산의 평균 가격 상승률은 5.5%를 기록해 전년(2.5%)보다 배 이상 뛰었다. 수년 동안 경기 호조로 호텔 신축 붐이 불고 있는 베를린은 최근 뉴욕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호텔이 많은 도시가 됐다.

독일 경제의 성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층 더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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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선진국이면서도 중국·인도·브라질 같은 저(低)임금 신흥국들의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신흥국들이 경제 성장속도를 높일수록 수출과 무역·경상수지 흑자가 늘고 실업률은 낮아지는 절묘한 산업·고용 구조를 구축한 데다, 사회 전반의 낮은 부패도와 높은 정치적 안정성이 돋보인다.

둘째는 기업과 정부, 가계가 모두 선전(善戰)하는 '3위일체형(型) 체제'라는 것이다. 독일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대비 1.1%로 프랑스(5.7%)·영국(8.6%)보다 월등히 양호하며,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81.5%로 선진국 평균(103.5%)보다 20%포인트 이상 낮다. 가족형 중소기업들과 고급 자동차·화학·정밀기계 같은 제조업으로 무장한 산업계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852개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다(最多)이다. 가계의 순저축률(11.3%·유로통계청 2009년)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고, 신용카드 사용률(6.8%·2010년)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 나라의 경제 기적은 좀처럼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결과가 두 번이라면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다. Weekly BIZ가 현장 취재를 통해 욱일승천하는 독일 경제의 비결을 추적했다.

이달 13일 오전 11시쯤 기자가 찾아간 함부르크항(港)은 수출 컨테이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함부르크항은 최근 독일의 사상 첫 1조유로 수출 달성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터미널운영업체인 HHLA(Hamburger Hafen & Logistik AG)의 막스 존스(Johns) 이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이 추세라면 2025년에는 함부르크항의 컨테이너 처리 물량이 지금보다 3배 정도 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함부르크의 쇼핑 거리 ‘겐제마르크트’는 평일인데도 인파로 붐볐다. 신발가게 종업원 안나(Anna·26)는 “세일 기간이 아닌데도 진열대에 새 물건을 채우기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했다. 소비에 인색한 독일인들이 지갑을 여는 바람에 지난해 독일의 민간 소비는 1.5% 증가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최대 상업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의 경우, 2004년 20%에 달했던 시내 건물 공실률이 급감해 요즘 빈 사무실이 없다. 오피스 건물 임대료는 연평균 18%씩 상승했고, 시내 곳곳에는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를 수출하는 ‘기술 수출국’

독일 경제성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 동력인 수출의 강점은 ‘크기’보다 ‘내용물’에 있다. 경쟁자가 많은 소비재를 팔지 않고 아무나 모방할 수 없는 ‘기술’, 즉 ‘생산재’를 파는 것이다. 독일경제연구소(IFO)의 게르노트 네르브 연구원은 “독일은 높은 기술을 보유한 ‘하이 퀄리티’의 제품을 수출해 견고한 경제성장을 유지한다”며 “이런 독일의 수출력은 훌륭한 인적 자본과 기업의 혁신 투자, 적절한 수준의 임금 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소비재 대신 생산재 수출
단기 실적에 연연 않는
유한기업 90만개 넘어
굯 회사 BMW가 대표적
367만개 중소기업의 힘
총매출 5% R&D에 투자
美기업 평균의 20배


유럽 전체가 재정 위기로 신음하던 지난해에도 독일 자동차와 기계·제조, 화학·철강 등은 2010년 대비 8.8~14%씩 성장했다. 이런 생산재 수출형 경제 구조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과 ‘경쟁’이 아닌 ‘협력’ 구도를 만든다. 즉 중국 등이 수출 물량을 늘리거나 수준 높은 물건을 만들려면 독일의 ‘고급 기계’들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울리히 라이펜하우저 독일기계설비협회(VDMA) 회장은 “지난해 중국에 대한 플라스틱·고무 설비 산업 분야 수출이 30.5% 증가한 7억6640만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한 국가에 대한 수출액으로 사상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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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기업’으로 R&D 장기 투자 활발, 367만개 중소기업의 힘!

독일 기업들이 수준 높은 기술을 보유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유한 기업(GmbH)’ 제도이다. 유한 기업은 소수의 창업자나 임원들이 적은 자본금으로도 세울 수 있다. 주주들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주식회사(AG)와 달리, 단기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 등에 집중할 수 있다. 독일에는 90만개가 넘는 유한 기업이 있는데, 자동차 기업인 ‘BMW’와 명품 여행가방인 ‘리모와’가 해당된다. 독일 정부 역시 유한 기업 설립을 장려한다.

전체 기업 중 99.6%(367만개)를 차지하는 중소기업(Mittelstand)도 독일 경제의 핵심 견인차이다. 이 가운데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에 드는 히든 챔피언급만 1350여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독일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세계 2위이며, 이들은 바스프·바이엘·지멘스·다임러 같은 대기업과 연계해 세계 최강의 제조업 경쟁력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중소기업의 총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은 3.6%로 대기업(3.1%) 보다 높고, 독일 ‘히든 챔피언’들은 총매출의 5%를 R&D에 투자한다. 이는 미국 기업 평균의 20배 수준이다.

포퓰리즘 이겨낸 ‘뚝심 리더십’과 협력적 노사 관계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더 높은 성장과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를 외치며 ▲소득세 감면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고용기간 신축 조정 등을 통한 해고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어젠다(Agenda) 2010’ 개혁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05년 이전까지 최장 36개월이던 실업 급여 지급기간이 12개월로 줄고, 월급여 400유로(약 65만원) 미만인 미니 잡(mini job) 같은 저임금 일자리도 탄생했다. 2010년 당시 730만명이 ‘미니 잡’에 종사했다.

포퓰리즘 극복한 리더십
실업수당 지급 축소 등
슈뢰더, 경제 체질 개혁
국민들 거센 반발로
야당에 정권 내줬지만
후임자 메르켈 총리는
더 강력한 드라이브 걸어


슈뢰더의 개혁 정책은 정치적 반발을 초래해 2005년 야당이던 기독·기사연합(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메르켈은 전(前) 정권의 정책을 뒤집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추진했다. “슈뢰더의 복지·노동 시장 개혁이 없었다면 지금의 독일 경제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김영찬·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지점장) 중학교 때부터 ‘직업준비학교(중학 과정)→직업학교(고교)→마이스터(대학)’를 통해 체계적으로 기술 교육을 받고 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회사(실습)와 학교(이론)의 이중(二重) 교육을 받는 교육제도는 청년 실업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비책이다. 기업들은 숙련공을 확보하게 돼 이를 반긴다.

독일 공공부문 노조는 지난달까지 10년 동안 임금 인상을 하지 않았다. ‘해고하지 않는 대신 2011년까지 임금 동결’이라는 협정을 10년 전 사측과 맺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박사는 “정부와 기업, 노조 등 경제 주체들 간의 협력과 대화가 독일 경제의 주춧돌”이라고 했다. 2009년 독일 정부가 단축근로제도(Kurzarbeit)를 도입하자, 근로자들이 적극 호응한 게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경기침체 시 기업은 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한시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고, 정부는 기업에 보조금을 줘 삭감된 임금의 60%를 보전해주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