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이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나눈 대화를 화제로 꺼냈다. "김형. 아들놈에게 열심히 공부해라,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 행복하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예쁜 부인도 얻고 근사한 집에서 떵떵거리고 잘살 수 있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아들놈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아버지! 좋은 대학 나와서 출세해봐야 결국 감옥에 가던데요. 돈이 많든, 권력이 있든 몽땅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가는데 그게 정말 잘되는 거예요?"

그는 아들에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지독한 경쟁을 뚫고 성공하라고 재촉한 자신이 '속물 같다'고 창피해했다. 그가 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단어는 따로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겸손, 상식, 품위, 존경, 국가에 대한 헌신, 가족에 대한 사랑 등이었다. 하지만 정글 같은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한가한 말을 할 여유가 없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부모는 자식들에게 "공부해라, 게임하지 말라"는 말만 입에 달고 산다.

그런 아이들이 뉴스를 보면서 뭘 느낄까? 자고 나면 또 다른 '더러운 손'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원로 격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고, 후세의 교육을 책임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돈으로 상대 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검사가 그랜저와 벤츠를 선물 받고,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청와대 경호처장은 경호장비업체로부터,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운영자로부터 돈을 먹는 세상이다. 저축은행장들이 줄줄이 횡령·배임 혐의로 감옥에 가고, 저축은행을 감독하는 금융감독기관 공무원도 함께 수갑을 찬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나 고위 정치인, 재벌 회장까지 교도소를 자기 집 드나들듯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홍콩 소재 기업컨설팅 연구소가 발표한 아시아 국가 부패지수를 보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아시아 16개국 중 11위를 기록했다. 국가청렴도를 따지자면 태국(9위)이나 캄보디아(10위)만도 못한 나라이다.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지난 6년간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청렴도 순위가 2010년 39위에서 지난해 43위로 추락했다.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수출강국이 되었다고 선진국은 아니다. 부패를 척결해서 높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부패하면 경제성장도 한계에 부딪힌다. 정직하지 않은 나라에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 리 없고, 부정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만드는 제품의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자라나는 세대에 '부패한 정치인'과 북한노동당 노선을 추종하는 '종북(從北) 정치인' 중 누가 더 나쁘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그들에겐 권력을 악용해서 자기 주머니만 채우는 놈이 더 나쁜 악당으로 비칠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진 세대와 기성세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경쟁자를 제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 버는 게 최고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열정과 재미를 말하고, 재능을 발굴해야 한다. 겸손과 애국심, 품위와 존경, 헌신과 희생, 사랑을 주제로 대화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처럼 부패와 비리에 둔감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