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의 당(黨)·정(政)·군(軍) 매체들은 19일 12시
'전체 당원과 인민군 장병과 인민에게 고함'이란 발표문을 통해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 중 중증 급성 심근경색과 그 합병증으로 17일 오전 8시
30분 전용열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나이 69세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유일(唯一) 절대 독재자 김일성의 아들로,
199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한동안 김일성의 유지(遺旨)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유훈(遺訓) 통치' 시대를 이끌다 1998년 국방위원장에
취임, 북한을 통치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1974년 2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된 이후 '당
중앙'(黨 中央)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북한을 다스려 왔기 때문에 김정일의 북한 통치 기간은 37년에 이르는 셈이다. 1945년 이후 북한의
역사는 1945~1974년 김일성 단독 통치시대, 1974~1994년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 공동 통치시대, 1994~2009년 김정일 단독
통치시대, 2009~2011년 김정일·김정은 부자 공동 통치시대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의 봉건적 현실은 2009년 개정된 북한 헌법
전문(前文)의 '조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나라이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의 창건자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始祖)'라는 구절에 집약(集約)돼 있다.
2400만 주민이 사는 나라의 절대 권력이 부·자·손(父·子·孫) 3대
66년에 걸쳐 상속된 역사는 봉건시대가 끝난 이후 북한의 김씨왕조(金氏王朝) 하나뿐이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발표문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에 따라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 혁명의 위대한 승리' 운운하고 있고, 오는 28일 치러질 장례식을 주관할 국가장의위원회 명단 맨
앞에 김정은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나 부·자·손 3대 통치는 김정일 사망으로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김일성은 북한군을
창설하고, 북한 노동당을 창당한 배경과 소련의 배후 지원으로 당과 군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고서도
선군(先軍)정치란 이름으로 국가 예산과 권력을 군에 몰아주는 군 영합주의(迎合主義) 통치방식을 채택해, 군과 함께 공동 통치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후계지원 기간도 길지 않고, 군과 당에 지지세력을 심을 틈도 없었던 김정은 시대의 권력이 머지않아 공산국가에서 권력의 근거인
총구(銃口), 즉 군부로 집중될 것은 자명한 결과다.
북한 권력의 앞날은 제1 실세 집단인 군이 '김씨 일족의 혁명의 나라'라는
가짜 역사에 세뇌(洗腦)된 북한 주민을 통치하는 수단과 명분으로 김일성·김정일로 내려오는 혈족(血族)을 얼마 동안 어느 정도 이용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북한 군부의 선택 대상이 김정일의 여러 부인 소생인 김정은·김정남·김정철과 김정일의 이복(異腹) 동생인 김평일 가운데 어느 쪽일
것이냐는 단지 군의 편의(便宜)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사태는 북한 권력이 김씨 일족을 떠나 실세 권력으로 모아지기까지 숙청과
유혈이 지금보다도 혹심하게 진행돼 그에 따라 죄 없는 북한 주민의 희생이 얼마나 커질 것이냐는 것뿐이다.
김정일의 비공식 통치기간
37년, 공식적 통치기간 17년은 유혈(流血)과 테러와 폭력과 집단 아사(餓死)로 얼룩진 폭정(暴政)의 시대다. 김 위원장은 1974년 북한의
공동 통치자로 부상한 다음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지 폭탄테러사건,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2002년 서해상의 우리 해군 기습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입안자(立案者)이고, 실행자(實行者)였다.
그러나 2400만 북한 동포들은 대한민국의
희생보다 몇십배 몇백 배나 더 처참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식량을 사들여야 할 수십억 달러의 돈을 핵무기
개발에 투입하며 1994~1998년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우리 민족사 최대의 집단 아사사건을 '고난의 행군'으로 미화(美化)하고 비극을
조장(助長)·방치했다. 김일성이 6·25 남침을 통해 수백만 명의 동족을 총과 대포의 밥으로 몰아넣었다면 김정일은 남쪽을 향한 테러와 북한
주민을 굶겨 죽임으로써 대량 학살 주모자라는 흉가(凶家)의 대(代)를 이은 것이다.
대한민국과 남북 7500만 동포는 지금
역사적·민족적 '진실의 순간'을 만나고 있다. 민족의 운명과 진운(進運)이 걸린 사태 앞에서 오늘을 걸머지고 내일을 개척해야 할 우리는 김씨
부자의 죄업(罪業)의 무게와 크기를 달아볼 여유조차 없다. 우리는 김씨 왕조가 몰락한 이 순간 남북관계를 넘어 한반도 전체를 관리해야 할 유일한
당사자(當事者) 입장에 서게 됐다. 어느 누구도 이 부담을 뿌리칠 수도, 이 짐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 가깝게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멀리는
민족 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느냐는 문제가 김씨 왕조 몰락과 동시에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1 시급(時急) 과제는
김정일 사후의 권력 공백이 대량 숙청과 대량 학살로 이어져 북한 동포의 희생과 공포가 가중(加重)되는 사태를 우선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제2의
과제는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의 유출과 관리 허술을 예방할 유효(有效)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다. 제1의 과제와 제2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 표명, 특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한·미 동맹의 진가(眞價)를 발휘해야 할 시간이고, 중국과의
소통(疏通)에 최대한의 외교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 장면이다. 핵과 미사일의 유출은 미국과 중국의 긴장을 촉발할 뿐이라는 점에서도 한·미,
한·중의 협력은 물론 미·중의 긴급 대화가 절실하다.
제3의 과제는 우리 대북 정책의 근본 바탕인 북한 동포의 인간다운 삶이
복원(復元)될 수 있도록 우리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도모하는 것이다. 배급 사회는 권력 공백기에 배급체제의 붕괴로 인한 참변이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의 임시 지도부에게 긴급 식량지원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알릴 일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순간에 대화의 통로가 끊긴 남북을
잇는 긴급 소통의 방책(方策)도 찾아질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전체(全體) 사회의 붕괴, 권력 이행기(移行期)에는 주민의 대량 탈출이 빈번히
발생해 왔다는 역사적 전례(前例)를 돌아보고 그에 대한 대비도 세워둘 필요가 있다.
북한 임시 지도부에게 민족적 양심(良心)에
입각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핵(核)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틀 안으로 복귀함으로써만 북한이 오늘의 모든 곤경(困境)을 헤쳐가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에 귀를 열라는 호소다. 북의 새 지도부가 그런 결단을 한다면 우리는 북한이 권력 이동이라는 혼란기를 벗어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알려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계의 태세는 철저히 해야 하지만 불필요하게 북을 자극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 역시 긴요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우리 정부가 전군(全軍)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한 것을 북이 추후 트집 잡았던 사실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적·국민적 역량(力量)을 투입하는 진인사(盡人事)의 자세다. 여기에
대통령과 일반 국민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여·야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이 순간 소리(小利)를 탐하는 개인과 집단은 영원히 죽을 것이고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과 집단엔 민족의 앞길을 개척할 소임(所任)이 부여될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이 순간부터 하루·일주일·한달·일년 단위로 살 수 없다. 분(分)과 초(秒)를 다퉈가며 정세를 주시하고 대응책을 마련·실천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