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배경.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은 핀란드에서 흑해에 이르는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소련으로 침입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에 대한 과소평가, 사회주의 체제의 급속한 내부붕괴의 기대에 근거하고 있었지만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의 도래와 함께 정체되었고, 12월에는 소련군의 반공(反攻)이 시작되었다. 그 해 12월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37년 7월 이래로 일본은 중일전쟁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었고, 영 ․미와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1940년 5월 이래 독일이 네덜란드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영국 본토 상륙의 기미가 보이자, 일본은 1940년 9월에 독일 ․이탈리아와의 3국동맹을 체결하였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및 네덜란드령 인도차이나를 침공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수출제한, 미 ․영 결속, 장제스정권 원조강화로 대응하였다. 1941년 6월 독 ․소전(戰)이 시작되자, 일본에서는 재차 북진론이 대두되어 대소전의 준비가 진행되지만, 정부로서는 남진 방침을 결정하고 7월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에 진주하였다. 이것은 미 ․일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미국은 즉각 재미 일본 자산을 동결하였고 석유의 대일 반입제한을 실시하였다. 이 조치는 일본 군부의 대미개전론을 자극하였고, 10월에 주전파인 도조 내각이 들어섰다.
12월 8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다. 따라서 동월 11일 일본과 연맹을 맺었던 독일 ․이탈리아도 미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이리하여 세계의 여러 전장(戰場)은 일체가 되었고, 그동안에 유럽만의 전쟁이라고 치부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쟁의 참가를 선언하였다. 당시 미국인들사이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내부 반전운동등으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각국에 펼쳐지던 전쟁을 그저 방관하고 있었으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빌미로 아시아 태평양전쟁 또한 유럽까지 전쟁에 개입, 참전을 하게 되었다. 연합국(민주주의) 대 추축극(파시즘)이라는 기본적 대항관계(성격)는 명료해졌다. 1942년 1월 1일, 미 ․영 ․중 ․소 등 26개국은 연합국 선언에 조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