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대재앙의 전조인가, 이상할 것 없는 생태계 현상인가.
새해 들어 미국과 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조류·어류가 집단 폐사(斃死)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하늘에서 죽은 새떼 수천마리가 비처럼 쏟아지고, 강물 위에 물고기 사체 수만마리가 둥둥 떠다니는 등 괴이한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몇몇 사례의 경우는 전문가들도 똑부러지는 사인(死因)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한동안 잠잠해졌던 지구종말론이 다시 제기되는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잇따르는 새떼, 물고기떼 의문사
8일 이탈리아 조류보호협회는 “볼로냐에서 남동쪽으로 50km 떨어진 파엔차(Faenza)에서 지난 1일부터 지금까지 700마리가 넘는 죽은 멧비둘기들이 수거됐다”고 밝혔다. 파엔차 주민들은 “새들이 한두 마리씩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10마리, 20마리씩 떼지어 떨어졌다”며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 같았다”고 전했다.
죽은 새들은 한결 같이 부리가 푸른 빛을 띄었다고 목격자들은 설명했다. 이탈리아 조류보호협회 측은 현재 죽은 새들이 독극물을 먹고 집단폐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밀 검사를 통해 사인을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괴이한 떼죽음이 이탈리아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국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새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11개국에서 30건의 조류·어류 떼죽음이 보고됐다. 발생 국가는 미국, 스웨덴, 영국, 브라질, 뉴질랜드, 일본, 태국 등 초(超) 대륙적이다.
이러한 동물 떼죽음 사태는 미국 아칸소주(州)에서 시작됐다. 2011년 새해를 30분 앞두고 아칸소주 비브시에서 죽은 새떼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끔찍한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민가 지붕과 정원 등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새는 4000∼5000마리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죽은 새들이 벼락이나 새해맞이 폭죽에 맞았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명확한 사인은 규명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새떼의 죽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일 스웨덴의 팔최핑이라는 마을에서는 도로 위로 죽은 갈까마귀 100여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같은 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포인트 쿠피패리시에서는 붉은어깨찌르레기 500마리가 죽은 채 도로 위에 떨어졌다. 펜실베이니아주 길버츠빌에서도 찌르레기와 울새 수백마리가 떨어졌고, 이탈리아 파엔차에서는 멧비둘기 사체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물고기 떼죽음은 새보다 더욱 심각하다. 아칸소주에서 찌르레기 떼죽음이 발생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달 30일 아칸소강에서는 민어과에 속하는 드럼피시 10만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뒤이어 브라질 남부 파라나구아 해안에서는 100t에 달하는 정어리와 흑조기, 메기 등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만에서도 물고기 수천마리가 둥둥 떠다는 모습이 목격됐다. 뉴질랜드에서도 6일 물고기 집단폐사가 보고됐고, 영국에서는 켄트 해안을 따라 약 4만마리의 꽃게들이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발견됐다.
◆새해들어 왜 새와 물고기들이 떼로 죽고 있나
각종 조류·어류들의 떼죽음이 보고되면서 인터넷 상에는 각종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다. 동물이 인간보다 먼저 재앙을 감지한다는 속설 탓에 ‘종말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인터넷에서 ‘비밀정부’의 실험 때문이라거나, 고대 마야력(曆)에 예고된 종말의 도래에 따른 ‘아마겟돈’ 조짐이라는 음모론이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새와 물고기의 잇단 떼죽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검색엔진 구글은 6일 이와 관련된 ‘동물 떼죽음(mass animal deaths)’ 지도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구글은 지도 왼편에 동물 떼죽음 사건들을 관련기사 웹 주소와 함께 순서대로 정리하고, 지도 상에 표시된 지점을 클릭해도 관련 기사 웹 주소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지도에는 지금까지 11개국에서 30건의 떼죽음이 발생한 것으로 돼 있다.
이 같은 종말론적 시선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국립야생동물보건센터(NWHC)의 크리스틴 슐러는 “이런 현상은 어느 때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며 “세상에 종말이 올 것처럼 여길 여지는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USGS는 자체 홈페이지에 매주 평균 수십마리에서부터 수천마리에 이르기까지 새들이 집단으로 죽었다는 보고들을 올리고 있다.
집단 떼죽음의 시작을 알렸던 아칸소주 찌르레기 집단폐사에 대해, 아칸소주 수렵위원회의 캐런 로 박사는 “부검 결과 새들은 외부충격에 의한 심각한 내부출혈 때문에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며 “찌르레기가 앉아 쉬는 방향으로 10~12회의 불꽃놀이가 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신년 축하 불꽃놀이가 원인인 것 같다”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그러나 로 박사는 “조류 떼죽음의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며 ▲인근 공장의 유독가스 ▲소닉 붐(sonic boom·항공기의 음속 돌파 폭발음) ▲외계인의 공격 ▲정부의 독극물 살포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세계 각지에서 빈발하는 동물 떼죽음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가정을 내세우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개별 사건에 대한 명쾌한 원인 분석은 나오지 않아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발생했던 폭설·폭우 등 이상 기후들을 토대로 볼 때, 일련의 조류·어류 집단폐사 역시 ‘지구 이상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From 조선일보(1.9,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