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인 핀란드 노키아의 몰락은 표준 경쟁에서 밀린 패자(敗者)의 참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키아는 지난 20년간 혁신과 선한 기업의 상징이었다. 1991년 세계 최초로 유럽식(GSM) 디지털 이동통신을 상용화했고, 40%를 넘나드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며 휴대폰업계의 모범으로 추앙받았다. 노키아는 또 돈 벌기에만 급급한 회사가 아니었다. 인류 보편애의 경영철학과 최고 제품을 가장 값싸게 만드는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5달러 이하의 초저가 휴대폰을 만들어 인도와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에게 통신 문명을 선사했다.

통신 분야의 원천기술에서도 노키아를 따라올 기업은 없었다. 무려 4만2000건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무료로 공개해 세계 모바일 시장의 저변을 확대해왔다. 그래서 악착같이 기술 로열티를 받아내는 미국의 퀄컴과 비교되며 글로벌 상생(相生)의 표본이 됐다. 스마트폰 역시 노키아가 1996년 발표한 노키아9000 시리즈가 효시였다.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책임졌고, 노키아의 전성시대를 이끈 요르마 올릴라 전(前) CEO는 핀란드에서 대통령보다 더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그는 실제 대통령 후보로도 유력하게 여러 차례 거론됐었다.

그런 노키아가 휴대폰을 만든 지 3년밖에 안 되는 애플에 밀려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작년엔 노키아 1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첫 외국인 CEO를 임명하는 극약처방까지 했지만 시장점유율은 사상 처음으로 3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세계 시장의 50%까지 점유했던 스마트폰 점유율도 30%대로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노키아가 자랑하는 기술이 오히려 그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노키아는 지금껏 단 한 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내놓지 않았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애플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 계열로 양분되고 있는데도, 노키아는 자신들이 개발한 심비안 스마트폰에만 집착했다. 아이폰으로 눈높이가 한참 올라간 소비자들이 단순한 심비안 운영체제에 등을 돌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랬다. 하긴 10년 넘게 수조원을 투자해 만든 운영체제를 어떻게 쉽게 포기하겠는가.

터치스크린 폰을 내놓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플 아이폰 이후 삼성전자·LG전자·모토로라 등이 재빨리 트렌드를 추종한 것과 달리, 노키아는 6개월 이상 늦게 제품을 출시했다. 유럽의 맹주(盟主)는 미국의 저급한 휴대폰 문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노키아의 몰락을 보면 '우리 기업은 왜 글로벌 표준이 되지 못하고 따라만 하느냐'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든다. 표준 경쟁에서 승리하면 지금의 애플처럼 매출의 30%에 육박하는 이익을 낼 수 있지만, 그 뒤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기업처럼 특유의 순발력으로 꾸준히 2등을 하는 게 더 좋은 전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