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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대형 여객기 C919에 앞서 중국이 자체 제작한 소형 여객기 ARJ21-700. photo 로이터 |
지난 1월 21일 폐막된 미·중 정상회담으로 항공업계도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고속철 기술을 전수받는 대가로 중국 측과 항공기 제조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GE는 중국 국영 중국항공공업(中國航空工業·AVIC)과 50 대 50으로 향후 50년간 합자(合資)회사를 운영키로 합의한 상태다. 합자회사의 본사는 상하이(上海)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항공공업과 GE는 초기 투자에 드는 비용을 각각 7억달러(약 7700억원)와 2억달러씩 분담키로 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한다. 향후 설립될 합작사는 중국이 자체 개발 중인 중대형 여객기 C919에 탑재될 통신 및 항법장치를 공동개발할 계획이다. 중국으로 이전되는 기술 중 일부는 ‘꿈의 여객기’로 불리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기술로 알려졌다.
장신궈(張新國) 중국항공공업 부총경리는 “중국항공공업과 GE가 경험과 고유기술, 인재 방면에서 합작을 통해 강한 경쟁력을 가진 상용항공기 전장부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중국항공공업은 장기적이고 성공적인 합작관계를 형성하길 희망한다”고 중국 현지 언론에 밝혔다.
C919 프로젝트 가속도 GE의 항공 관련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됨에 따라 중국이 자체 개발 중인 중대형 여객기 C919 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C919는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자주기술개발과 국가핵심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립한 ‘국가중장기과학기술발전계획요강’에 따라 추진 중인 16개 프로젝트 중 첫 번째 프로젝트다. C919는 2008년 11월부터 본격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C919는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상용항공기(中國商用飛機·COMAC)에서 개발 중이다. 중국상용항공기는 중국항공공업이 주요 주주로 있는 회사다. C919의 C는 중국(China) 또는 코맥(COMAC·중국상용항공기), 숫자 9는 ‘천장지구(天長地久·하늘과 땅처럼 영원하다란 뜻)’의 ‘지우(久)’와 발음이 같은 숫자 ‘9(九)’, 숫자 ‘19’는 C919의 최대 좌석 수인 190석을 의미한다.
현재 156∼168석 규모의 단일통로식 여객기로 개발 중인 C919는 2012년까지 설계를 마치고 2014년 시험비행에 들어가 2016년 상업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C919는 지난해 11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주하이(珠海)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처음으로 외관을 드러냈다. 중국은 C919 외에도 C929(최대 290석), C939(최대 390석) 등 후속모델을 준비 중이다.
앞서 중국상용항공기는 C919보다 작은 70~90석 규모의 소형 여객기 ‘ARJ21-700’ 제작을 이미 끝마친 상태다. 2008년 11월 상하이에서 첫 번째 비행에 성공한 ARJ21-700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주량이 340대를 넘어섰다. 중국상용항공기 측은 “ARJ21은 ‘21세기를 위해 진화된 지역 제트기(Advanced Regional Jet for the 21st Century)’란 뜻”이라고 밝혔다.
취약한 제트엔진 기술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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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 중인 C919 항공기 동체.
그동안 중대형 항공기에 탑재되는 제트엔진과 전자통신기술은 중국 항공산업의 가장 취약한 고리였다. 러시아(구 소련)와 이스라엘 등에서 항공기술을 도입해 생산한 중국의 군용 전투기는 제트엔진의 추력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에 중국은 1~2명이 탑승하는 군용 전투기는 자체 생산했지만 중대형 민수용 여객기는 에어버스와 보잉 등에서 전량 수입했다.
중국의 항공기 엔진시장도 GE(미국)와 롤스로이스(유럽)가 과점하고 있다. 이에 C919를 개발 중인 중국상용항공기의 자회사 중항상용항공기엔진(中航商用飛機發動機)은 오는 2016년까지 엔진을 자체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미·중 항공합작사 설립으로 GE가 중국 측에 항공기술을 넘기면 중국의 항공기 개발 일정표는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GE 기술이 탑재된 C919가 일정대로 완성되면 세계 항공시장은 ‘ABC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을 대표하는 에어버스(Airbus), 미국을 대표하는 보잉(Boeing), 중국을 대표하는 ‘코맥(COMAC·중국 상용 항공기)’으로 재편되는 셈이다. 중국은 수출시장 외에 자국 내 항공수요 만으로도 충분한 신규 항공기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실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 때 중국은 보잉사와 항공기 20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후 주석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에어버스 항공기 102대를 구매했다. 오는 2016년 C919의 상업비행이 시작되면 이 중 상당수 물량은 C919에 돌아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도박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 GE 회장의 ‘도박’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미 GE 측은 지난해 11월 주하이 에어쇼에서 GE 계열의 항공기 리스업체 지카스(GEcas·GE Capital Aviation Services)를 통해 C919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아직 기본설계는 물론 안전성 검증도 안 끝난 항공기를 외관만 보고 선도입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으로 ‘뉴트런(Neutron·중성자탄) 잭’이란 별명을 얻은 잭 웰치(Jack Welch) 전 GE 회장이 직접 낙점한 후계자다. 이멜트 회장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워싱턴 국빈방문 기간 동안 미국 측 재계대표로 참석해 오바마 대통령, 후 주석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멜트 회장은 지난 1월 21일에는 ‘백악관 일자리·경쟁력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도 낙점됐다. 이멜트 회장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중국 시장에 ‘올인’할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는 “GE의 이번 계약으로 미국의 최신 항공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는 최근 공개된 중국의 스텔스 전폭기 ‘젠(殲)-20’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도 맥을 같이한다. C919를 개발 중인 중국상용항공기 측은 “미국의 보잉737, 유럽의 에어버스320 등이 C919의 경쟁기종”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도 ‘GE가 보잉787 기술을 중국과 공유하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GE 같은 서방기업에 기술이나 거래기밀을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그동안 서방의 어떤 기업도 항공산업계의 거인인 GE처럼 중국이 추구하는 항공기술을 넘겨주는 데 적극적인 곳은 없었다”고 GE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