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교육' 최용준 회장_수학의 정석? 해법수학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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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준 회장의 집무실 맞은편에는 자료실이 있다. 평생에 걸쳐 세계를 돌며 수집한 각국의 참고서와 자신이 펴낸 책들이 가득 쌓여 있다. 최 회장은“내 제일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
염상섭의 소설 '삼대(三代)'를 뺨치는 가족이 있다. 증조부는 전남 신안군 팔금면의 대지주였다. '내 땅 밟지 않고는 걸어 다닐 수 없다'는 그 재산이 첩(妾)에게 넘어갔다. 아들은 진도 임해면 팽목리로 갔다. 먹고 살기 위한 이주였다.

손자 대에 집안 일으킬 기회가 왔다. 풍선(風船)에 가득 실린 땔감은 목포에서 쌀, 보리로 둔갑했고 그게 영광군 낙월도에서 육젓으로 변했다. 물물교역으로 평생 모은 돈이 며칠 새 날아갔다. 귀신도 못 말린다는 노름에 빠진 것이다.

9남매의 다섯째 최용준(崔容準·69·천재교육 회장)은 그때 석교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거덜난 집에 월사금 낼 돈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제적 후 겨우 돈 모아 인근 학교에 편입했는데 '용이 오른다'(龍登)는 그 이름이 그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가난은 삶의 목적을 생존으로 좁혀준다. 석교중학에서 공부로 이름 날린 뒤 목포해양고에 들어갔다. 이유는 순전히 등록금·기숙사에 옷값, 식비, 용돈까지 준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기관사(機關士)가 되려는 꿈이 고3 때 기우뚱했다.

"당시 은사님께서 '서울대학에 가면 등록금도 적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먹고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정확히 여섯 달 공부했습니다. 사대(師大) 수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비슷해요. 수학하면 과외를 잘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해법수학'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수학의 정석'과 함께 수학참고서 시장을 양분한 그는 지금 한해 3800종(種) 6000만권을 펴내는 '참고서 왕국'의 황제다. 목표는 2년 내 1억권을 돌파한 뒤 종합출판그룹으로 회사를 키우는 것이다.

해법수학과 천재교육

그는 결국 운명처럼 '수학'으로 먹고 살게 된다.

―대학졸업 후 취직을 안 하고 학원강사가 됐습니다.

"수학이 적성에 안 맞았어요. 대학 4년 동안 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어요.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꾸려 했습니다. 유학 다녀와 교수 되려했는데 회사원 월급으론 10년 모아도 힘들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EMI학원이었죠.

"공채(公採)였는데 저 하나 합격했어요. '수학의 철저적 연구'라는 참고서로 가르쳤는데 하루 100분짜리 강의 여섯개를 맡았습니다."

―한참 돈을 벌다 3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제가 폐가 약해요. 대학 때 폐결핵에 걸렸는데 재발한 거지요. 하루 12시간 백묵가루를 마셔댔으니까요."

―'해법수학'이 그 직후 태어났지요.

"학원강의, 개인지도를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어요. 예를 들어 미분(微分)의 극한값 부분에서만 문제를 300~500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다 풀 수는 없잖아요. 미분과 적분(積分)에 15개의 섹션이 있습니다. 그 안에 6~7개, 많게는 12~13개 패턴이 있는데 그것만 이해하면 많은 문제를 다 풀지 않아도 98%는 해결할 수 있거든요. 제 책은 그런 목적으로 만든 겁니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이 지은 '수학의 정석'보다 내용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도쿄대, 교토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기출 문제에 우리 고교에서 출제된 문제 중 엄선한 것을 데이터베이스화했지요. 그 책이 1974년에 나왔는데 당시는 대입 본고사가 있었으니 어려웠을 겁니다."

―대박이 났지요.

"한해 100만권에서 120만권쯤 나갔습니다. 교학사에서 5년간 내다 판권을 진명출판으로 넘겼는데 당시 돈으로 1억원을 받았어요. 모기업이 진명서적인데 그 회사가 펜션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부도가 났어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제가 출판사를 만들게 된 겁니다."

―수학은 영원한 학부모들의 미스터리입니다. 혹시 왕도(王道)가 있다면.

"아주 쉬운 책부터 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곤 난이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도 '기'가 살거든요. 어려운 문제 붙들고 끝장내는 식, 그거 금물입니다."

―수학의 도사는 자녀도 수학도사겠지요.

"전 아이들 직접 가르쳐본 적 없어요. 자식 지도하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공부들은 꽤 했어요. 아들은 의사, 딸은 주붑니다."

―출판사 이름이 '천재교육'인데 작명(作名)은 직접?

"제가 지었죠. 우리 어머니들이 '천재'란 말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영재'와 '천재'를 놓고 고민했는데 '영재'는 어느 회사에서 먼저 썼어요."

계란으로 바위를 무너뜨리다

실패(失敗) 없는 신화(神話)는 없다. 천재교육의 첫 출발이 천재답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고전했지요.

"종로학원의 유명 강사에 일류고 출신 교사를 모아 전 과목 참고서를 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집필자들이 준비가 안 된 거였어요. 그 손실 메우느라 고생했지만 교훈도 얻었어요. 다른 책에 없는 메리트에 수요자인 학생, 교사, 학원선생님이 원하는 걸 넣어야 된다는 걸 그때 알았지요."

―당시 초중등 참고서의 강자는 동아와 교학사였습니다.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어요. 두 회사의 점유율이 30년간 98% 정도 됐으니까. 학원사·삼성출판사 같은 곳이 도전했는데 번번이 깨졌거든요. 동아는 완전정복 시리즈, 교학사는 필승시리즈가 유명했습니다. 전 정면대결을 벌이지 않으면 영원히 2, 3류밖에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낸 게 '해법시리즈'와 '1000제 시리즈'였습니다.

"우리 참고서에 미스(miss)가 많아요. '마스터수학'이라고 유명한 참고서가 있었는데 검토해보니 중학교 '집합(集合)'부분에 고교 내용이 나오고 답에도 오류가 있었어요. 그런 걸 간파하고 달려드니 3년 만에 중학교 참고서 시장을 장악하게 됐지요. 지금은 천재교육이 초중고 참고서 시장의 60%입니다. 교과서 시장도 점유율이 30%로 1위고요."

―그런데 그 교과서 중 일부가 좌파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금성출판사가 더 많긴 하지만 그건 필자들에게 맡긴 거고 심의를 통과한 거니까…, 수정 명령이 내려오면 고쳐야지요."

―성공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전 필자를 고를 때 3가지 원칙을 지켜요. 첫째는 서울대 출신, 둘째는 30대에서 40대 중반. 20대는 경험이 없고 50대는 정체되기 싶거든요. 셋째는 서울의 명문고에서 교사로 일한 경력이지요. 그런 분 찾는 게 쉽지 않아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기본에 10번 찾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요자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죠.

"우리는 고객평가단과 검토단을 만듭니다. 거기 상당한 비용이 들긴 하지만요. 고객평가단은 학생, 학부모, 선생님, 학원강사에 서점 주인들이 포함됩니다. 요즘엔 디지털인쇄기가 있어 그분들 지적을 교정하기가 쉽지요. 고객평가단의 평가를 받아 검토단에서 수정하면 필자는 녹초가 되기 일쑵니다. '자존심 상한다'는 분도 많지만 나중엔 고맙다고 합니다. 책이 호평을 받는 게 필자한테 중요하잖아요."

―주력 상품이 고교→중학→초등학교로 옮아갑니다.

"초등학교 시장이 제일 넓으니까요. 제가 이런 질문 하나 할까요? 초등학교 수학 참고서가 몇 종류나 될 것 같습니까? 많이 잡아보세요. 36종입니다. 기초, 발전, 심화, 경시(競試), 올림피아드,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쪽지시험 대비용까지 있지요. 아이들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아진 겁니다."

―입맛에 맞게 만드는 건 좋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건 아닐까요.

"요즘 아이들은 떠먹여 주지 않으면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그래서 출판의 경향이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뀐 겁니다."

나의 두 가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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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준 회장의 지금은 절판된 해법수학을 펴보이고 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수학의 정석’과 함께 수학 참고서 시장을 양분했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과 '성문종합영어'를 쓴 고 송성문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참고서 저자들은 특이한 업적을 남겼다. 홍 이사장은 명문고를 세웠고 송씨는 국보급 문화재를 사비로 모아 나라에 헌납했다.

―회장도 장학사업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출판사를 세울 때 뜻한 바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돈 벌겠다는 욕심을 비우고 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자, 둘째는 수익의 일부를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고 사각지대(死角地帶)의 교재를 개발하자는 겁니다."

―수익의 사회환원이 쉽지는 않지요. 최 회장께서는 고향 진도에 공립고교 용지를 기부하는가 하면 서울대에 25년째 장학금을 기부했습니다. 그 금액이 100억원 가까운 것 같은데요.

"간부들이 '아직 우리가 베풀 입장이 아닙니다'라고 반대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랬지요. '우리 쌀독이 가득 차려면 20, 30년 후에도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돕는 게 진정한 보탬 아니냐'고요."

―사각지대라는 건 뭡니까.

"예전에 고교 다닐 때 제2외국어 뭐 하셨어요? 당시 독어, 불어 공부하는 고교생이 각각 한해 30만명에서 35만명쯤 됐습니다. 지금은 8000명 정도예요. 도저히 수익이 나올 수 없지만 그래도 만들어야 되잖아요. '우리가 안 하면 만들 회사가 없다'는 사명감 같은 겁니다."

―그렇군요.

"그뿐 아닙니다.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도 무슨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와요. 책임자가 보내는 게 아니라 공부하려는 사람들 편지인데 그거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 시각장애인들 참고서는 또 어떻고요. 제가 유달리 남 돕는 데 관심 있다기보다 고교와 대학 다닐 때 모두 나라 덕을 봤잖아요. 그걸 갚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공과 베풂의 배경이 우리의 복잡한 입시제도 때문이라는 게 아이러니컬합니다.

"그렇죠. 요즘엔 EBS 교재에서 거의 출제되니 공교육의 존재도 모호해졌고요. 교육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내신 위주로 가는 게 정답 아닌가 합니다. 학교 간 서열은 전국 일제고사 같은 걸로 커버하면 되고요. 본고사는 절대 안 되지만 논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술이 또 다른 사교육을 불러일으키는데도요?

"예전에 독일과 프랑스의 교육격차가 컸어요. 지금은 프랑스가 아주 근접했고 일부 산업에서는 독일을 추월했어요. 전 그게 '바칼로레아'의 힘이라고 봅니다. 미국 SAT도 전에는 영어, 수학뿐이었는데 지금은 논술이 추가됐잖아요. 논리적인 사고, 그게 나라의 경쟁력이 됩니다."

―그 덕에 학부모들 허리가 휘지 않습니까.

"역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나라가 져야 할 부담을 부모들이 허리띠 졸라매 메우는 측면이 있지만 나중에 굉장한 경쟁력이 될 거라고 봅니다. 조기유학 같은 것도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에요."

―칠십을 바라보시는데 삶이 행복합니까.

"전 술 담배를 안 해요. 밤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집 주변 우면산에서 운동하다 오전 5시 반쯤 출근합니다. 제가 1998년에 상처(喪妻)를 해서…."

―부인 생각이 나는 모양입니다.

"제 집사람이 경기여중, 경기여고에 이화여대 영문과 나왔어요. 누구 소개로 사귀다 아무래도 제 집안이 모자라는 것 같아 헤어졌는데 나중에 수녀 되겠다는 소릴 듣고 다시 만났어요. 당시 정신적으로 고통 준 게…."

최용준 회장의 금천구 가산동 2층 사무실 책상은 10권씩 쌓은 참고서로 가득했다. 거기 빨간 줄을 긋는 게 그의 행복 아닐까 싶었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이가 정작 고단하다지만 눈빛 형형한 참고서의 제왕에게선 그런 티를 엿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