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파산보호 신청
디카 최초로 개발하고도 필름 시장에만 안주, 디지털 시대의 낙오자로

'필름 업계의 제왕' 코닥이 결국 무너졌다.

안토니오 페레즈 '이스트먼 코닥' 최고경영자(CEO)가 19일 미국 뉴욕 남부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사회와 경영진은 연방 파산법 '챕터 11'의 관련조항을 검토한 결과 파산 보호 신청이 코닥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라는 의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챕터 11에 따른 파산 보호 신청은 기업의 채무이행을 중지시키고 자산매각 등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절차를 말한다. 해당 기업이 법원에 제출한 상환 계획을 채권단이 수용하면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파산 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경영권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 코닥은 이와 함께 시티그룹으로부터 18개월 동안 운영자금 9억5000만달러(약 1조원)를 융자받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코닥 본사와 미국 내 자회사들을 제외한 외국 자회사들은 파산 보호 신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코닥은 1881년 사진 기술자 조지 이스트먼이 설립했다. 1884년 이스트먼은 롤필름을 선보였고 1888년 조작하기 쉽고 휴대하기 편한 코닥 카메라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76년 미국에서 필름 판매 점유율 90%, 카메라 판매 점유율 85%를 기록하는 등 필름과 카메라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영상 판도가 변하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선점한 기존 사업에 매달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기존 주력제품이던 필름 시장을 잠식할까 봐 디지털 카메라의 개발과 마케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소니가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카메라 '마비카'를 출시한 1981년에도 코닥 경영진은 디지털카메라를 기회가 아닌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코닥은 당시에도 미국 필름 시장의 80%를 차지할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디지털카메라로 점차 눈길을 돌렸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선정된 일본 후지필름이 값이 싼 필름을 들고 미국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 점유율을 잠식한 것도 코닥 침체의 원인이 됐다. 악재가 겹친 코닥의 영업이익은 1996년 159억7000만달러(약 18조원)에서 1997년 143억6000만달러(약 16조원)로 10% 이상 감소했다. 비록 2005년까지 필름 업계 1위를 지켰지만 이미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필름에만 의존하는 코닥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장에서는 필름 카메라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 코닥만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현재 코닥의 자산은 51억달러(약 5조8000억원)지만 부채는 67억5000만달러(약 7조6700억원)에 이를 만큼 누적적자가 쌓여 있는 상태라고 WSJ가 전했다.

코닥은 FTI 컨설팅 도미닉 디나폴리 부회장을 최고 구조조정 책임자로 임명하며 회생 의지를 보이고 있다. 페레즈 CEO는 "이번 파산 보호 신청으로 기술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기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특별한 사업 아이템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라고 WSJ는 전했다.